교육과 노동은 지금도 곧잘 교육 평론가가 주장하는 논리이지만 벌써 100년 이상이나 전에 그런 혜안을 가진 공장주의 편을 든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모순을 안게 된다.
왜 그런가?
공장 노동을 강요당하는 어린이는 공장에서는 단순한 기계로 취급받고, 학교에서는 하나마나 한 교육을 받는 것이 되어 후년에 공장으로부터 추방되지 않을 수 없는 무교양의 소유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학도 이런 경우가 있다.
진짜 교육은 노동에서 생긴다고 주장하며 대학 안에 노동훈련의 장을 만들어, 10년도 채 지탱하지 못하는 노동자로 인턴 교육을 하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바는 초등교육이지 대학 교육은 아니다.
대졸 노동자의 가치가 여기까지 떨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에 프랑스어 판 쪽에서 문장을 가져와 보기로 한다.
독일어 판과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자기 아들에게는 폴리테크닉이나 농업경제학 등의 학교를 만듦으로써 근대 생산의 내적 경향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직업교육과 같은 것밖에 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공장 자본으로부터 획득한 최초의 양보로서의 공장법이 조촐한 초등교육과 공장 노동을 연결시키는 것뿐인가를 본다면, 노동자계급에 대한 정치적 권력의 불가피한 수탈에 의해서 노동자 학교 안에도 실천적인 기술 교육이 인지되리라고 하는 점을 의심할 바가 없다.
자기 아이에게는 훌륭한 교육을 시키고 노동자의 아이에게는 속이 빈 교육을 시킨다고 하는 점은 지금도 달라진 바가 없다.
출신이 가난한 아이일수록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교육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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