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 장의 결론에 이르렀다.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직접생산자 자기 노동에 입각해 사유하는 사람의 해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직접생산자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생산자야말로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는 언젠가는 붕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인 의미로서의 파괴는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
따라서 이 수탈이 자본주의의 전사가 되는 일도 당연하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에 의해서, 자본의 집중으로 실현된다.
항상 한 사람의 자본가가 많은 자본가를 멸망시킨다.
이 집중, 즉 소수의 자본가에 의한 다수 자본가의 수탈과 함께 더욱더 대규모가 되는 협업적 형태, 과학기술의 의식적인 이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공동으로만 사용되는 노동수단의 전화, 결합된 사회적 활동의 생산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생산수단의 절약, 세계시장 전체에의 국민의 편입,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국제적 성격이 발전한다.
이런 전형 과정의 모든 이익을 수탈하여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가 끊임없이 감소되어 감과 동시에 궁핍, 억압, 예종, 타락, 착취의 정도가 증대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확대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기구 자체에 의해 훈련되고, 결집되고, 조직되는 노동자계급의 저항도 증대한다.
자본의 독점은 그에 의해서 또다시 그 아래에 생긴 생산양식의 걸림돌이 되어 간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그런 자본주의의 틀과 조화하지 않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그 틀은 파괴된다.
자본주의적 사유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되는 것이다.
'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64 (0) | 2016.04.19 |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63 (0) | 2016.04.19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61 (0) | 2016.04.19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60 (0) | 2016.04.19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59 (0) | 2016.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