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세계의 논의는 실은 상품의 문제과 마찬가지이다.
상품이 가치로 나타남으로써, 인간적인 점이 상실되고 화폐라고 하는 데에 등가됨으로써 모든 관계가 거꾸로 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이를 물신숭배라고 한다.
왜 이런 도착이 일어나는가.
상품생산 사회에서는 인간 개개의 사적 노동의 생산물이 시장을 통해서 배분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 시장에서 모든 구체적인 노동은 모두 가치로 환원된다.
개개의 유용한 노동은 그 자체가 아무런 뜻을 이루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 가치를 나타내는 것은 화폐이다.
더욱더 신비의 베일에 싸이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 가치에 대해 상형문자과 같다는 표현을 쓴다.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생산물의 비밀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이 상형문자의 뜻을 풀려고 한다.
왜냐하면 사용 대상의 가치로서의 규정은 언어와 마찬가치로 사회가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 생산물이 가치인 한, 그 생산에 지출된 인간 노동의 물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후의 과학적 발전은 인류의 발전 사상 획기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노동의 사회적 성격의 대상으로서 외관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상품생산 사회에 푹 젖어 있는 사람에게 이 특별한 생산 형태 상품생산 사회에서만 행하여지고 있는 즉, 서로 독립된 사적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성격이 인간 노동으로서 똑같다는 점이나, 노동 생산물이 가치적인 성격을 취한다는 점 등은 이런 발견이 있든 없든 당연한 듯 보인다.
그것은 마치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공기를 그 원소로 분해했다고 해도, 물리학적인 물적 형태로서의 공기의 내용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14 (0) | 2016.04.16 |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13 (0) | 2016.04.16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11 (0) | 2016.04.16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10 (0) | 2016.04.16 |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09 (0) | 2016.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