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자본은 자기의 오직 하나의 생명 충동 자기를 증식하고 잉여가치를 창조하려는 충동을 갖는다.
그 불변 부분인 생산수단을 써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잉여노동을 착취하려는 충동을 갖는 것이다.
자본이 마치 흡혈귀처럼 기운이 솟는 까닭은 사들인 노동을 착취할 때뿐이며, 많이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더욱더 기운이 솟아난다.
노동자가 노동을 하는 시간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가 매입한 노동시간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자유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자본가의 것을 훔치는 일이 된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는 착취하기 위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인 이상, 그것을 어떻게 쓰든 남이 알 바 아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딱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이론이 없다.
있는 것은 오직 필사적인 투쟁뿐이다.
다음의 문장에서부터 구체적인 사실을 추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을 표준화하는 문제는 노동일의 제한을 둘러싼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모든 자본가, 즉 자본자계급과 모든 노동자,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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