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편에서 생산적 노동의 뜻은 좁아진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다만 상품생산뿐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노동자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을 위해 만든다.
다만 노동자가 생산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가 생산적인 것은 자본을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든가 자본의 증식에 유용한 경우뿐이다.
이 잉여가치를 산출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한다면, 이제까지의 경제학 학설사 중에서 잉여란 무엇인가에 대한 차이에 의해서 생산적 노동의 개념이 달랐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따로 잉여가치 학설사를 쓸 예정이라 밝히고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산적 노동인 자본주의사회의 노동에 대하여 말하며, 노동일을 연장해서 얻어지는 절대적 잉여가치와 일정한 노동일 안에서 노동강화로 얻어지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문제로 옮겨 간다.
절대적인 잉여가치의 생산은 예로부터 있던 생산양식에 의해서도 생긴다는 점에서, 자본은 노동과정을 아직 완전히 자기 것으로 종속시키고 있지는 않다.
형식상 종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형식적 포섭이라는 말로 나타낸다.
그리고 기계의 도입에 의해서 생산 자체가 자본에 완전히 종속될 경우, 즉 과거 노동인 기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노동과정의 종속을 실질적 포섭이라고 부른다.
이 구별은 자주 나오기 때문에 중요하다.
160321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4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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