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

19세기의 마르크스 자본론 53

동철 김 2016. 4. 19. 10:41

이렇게 해서 영유 법칙은 자본가에게는 남의 불지불 노동을 자기 것으로 하는 권리,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에게 자기가 만들어 낸 생산물을 포기하도록 하는 권리로서 나타나게 된다.

자본가는 비생산적인 소비에 쓰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축적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이해했는데, 그렇게 되면 자본은 퇴장되고 만다.

그런 뜻에서 고전파경제학이 생산적인 투자를 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뛰어나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고전파경제작은 처음에 만들어진 잉여가치가 재투자되는 것은 가변자본, 즉 새로운 노동자의 생활수단의 구입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변자본의 구입으로 쓰이는 부분도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난 오해는, 추가 투자가 모두 새로운 노동자의 노임이 된다고 하는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이 논의를 부르주아가 이용한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요컨대 확대재생산은 항상 노동자의 고용을 낳는다는 발상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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